1948년에 일어난 여순반란사건으로 시작되는 빨치산의 이야기는 태백산맥의 조정래는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만석꾼이 살던 조선후기 ....
몽심재의 박씨가문이나 경주최씨처럼 적산가의 만석꾼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만석꾼은 그 만석을 채우기 위해 만명의 세작을 거둬 부자가 되었을것이다.
그들의 피와 눈물이 결국 여순 반란사건의 기본 민심의 틀이 되었는지 모른다.
세작을 못내면 그 자식을 딸년을 데려다가 욕보이고....
인간의 부에 대한 횡포는 입에 담지 못할 정도이다.
탱자나무 전설을 정리하며 이렇다.
탱자나무의 전설
부잣집의 세작을 먹고 살던 어머니와 자식을 가진 집이 있었다.
몇년동안 가난과 굶주림 그리고 흉년이 겹쳐 세작을 내지 못하던 집안
이곳에 한 노파가 찾아 든다.
큰딸을 부잣집에 세작대신 시집보내라고..
세작을 없애주고 논 세마지기를 주겠다고
하지만 반발하는 집안의 분위기에 노파는 큰딸에게 이런뜻을 전한다.
딸은 깊은 밤을 울면서 지새고
다음날 노파에게 논세마지기로 주지말고 쌀로 주라고...
그날 저녘 큰 딸은 식구들에게 자신의 결심을 얘기하고 다음날 부잣집으로 들어간다.
약속대로 가난한 집에 쌀이 들어왔다.
부잣집 노인에게 몸을 겁탈당하고 밤새 울던 큰 딸은
다음날 아침 목을 매어 숨을 거둔다.
이에 부잣집 노인은 속았다며 그집에 가서 쌀을 회수할것을 명한다.
하지만 쌀을 가진 식구들은 모두 떠나버렸다.
화가난 노인은 큰딸을 묻지말고 길에 내 버릴것을 명한다.
그리고 큰딸을 좋아하던 한 젊은남자가 시체를 수습하여
땅에 묻는다.
혹시 무덤이 들킬까봐 평무덤으로 땅에 묻어주고
몇달후 무덤위에는 가시가 온몸을 두른 나무가 솟아오른다.
그 남자는 그 나무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말라는 그 여자의 영혼이라 생각하며
그 나무를 동네에 심기 시작한다.
바로 그 나무가 탱자이다.
이게 우리 역사의 한이며 슬픔이며 고통인지 모른다.
만석꾼을 먹여살리는 만명의 집안에서 피어오르는 민초의 눈물을 나는
이 탱자나무에서 발견한다.
오늘 큰딸의 아픔과 무당 월녀의 딸 소화의 눈물과
김동리의 역마에서 나오는 여자주인공의 발길돌리는 한에서
우리는 대한민국 여자의 고통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그리고 그 고통이 승화되어 오늘의 역사를 이루고 있음을 나는 안다.
오늘 나의 땅 나의 지리산에서 전해 들어오는 땅의 메아리
그것은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지리산의 경치속에 숨겨진 지하수속에 베일과도 같다.
하지만 지하수물은 암반의 미네랄로 숙성이 되어 다시 우리에게 올라오듯
강원도에서는 화전민의 딸이 전라도에서도 세작민의 딸이 충청도에서는 대장간의 딸이
나에게는 탱자나무가 되고 구절초가되고 전설이 되고 역사가 되고 소설이 되어서
나의 가슴에 한 구멍을 내서 바람이 들어오고 있다.
그 바람은 나를 산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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