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길을 묻다
흙에서 길을 묻다
- 토양생태계를 통해 이해되는 자연관 -
서경대학교 화학생명공학과 교수 조홍범
백인들은 죽어서 별들 사이를 거닐 적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망각해 버리지만,
우리가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땅을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우리 홍인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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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은 어머니인 대지와 형제인 저 하늘을
마치 양이나 목걸이처럼 사고 약탈하고 팔 수 있는 것으로 대한다.
백인의 식욕은 땅을 삼켜 버리고 오직 사막만을 남겨 놓을 것이다.
모를 일이다. 우리의 방식은 그대들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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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을
그대들의 아이들에게도 가르치라.
땅은 우리 어머니라고.
- 워싱턴 대추장에게 보내는 시애틀 추장의 답글 중에서 -
자연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는 참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므로 자연의 질서를 유지하는 제 법칙들은 곧 우리 삶의 운영 원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치열한 경쟁 상태에 놓여 있다. 국민 소득은 올라가는데도 생활이 전보다 어렵다는 사람은 더 많아지고,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은 심화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연 그 자체가 치열한 경쟁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 역시 경쟁이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자연의 질서를 거스를 수 없다고 체념한다.
과연 자연의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 원리는 경쟁일 수 밖에 없는가?
▶ 생태학의 배경
자연과 내가 둘이 아니라는 우리에겐 당연한 '신토불이'의 정서도 서구 문명에서는 최근의 자각이다.
일찍이 서구 문명에서는 '인간이란 윤리적이고 문화적이며, 환경이나 유전자와 같은 생물학적 결정인자를 초월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로 자리매김해 왔다.
이러한 인식은 자연과 인간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자연의 모든 존재는 인간을 위한 수단적, 도구적 가치로만 평가했으며, 결국 오늘날 광범위한 생태계의 파괴와 범지구적 환경 위기를 초래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이에 대한 자각은 학문적으로 인간과 자연의 순환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생태학의 발달을 가져왔으며, 오늘날 생태적, 윤리적, 철학적으로 다양한 고찰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대 주류 생태학에서 지나치게 강조하는 바는 '경쟁의 패러다임'으로 자연의 질서를 해석한다는 점이다.
경쟁은 포식과 피식, 공생, 상조, 기생, 중립 등과 같이 생물들 간의 다양한 상호관계를 설명하는 가치중립적인 생태학적 용어 중 하나이지만 실제로 자연에서 이러한 상호관계가 고착된 예는 찾아보기 힘들며, 생물들 간의 상호관계는 오히려 유동적이고 순환적이다.
다시 말하면 생물들 간의 관계성은 생태계의 안정성과 항상성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때로는 경쟁적이나 때로는 협동하면서 궁극적으로 상호공존을 지향하며 유연하게 맺어진다.
결국 우리가 말하는 건강한 생태계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강한 생물들만이 생존하는 공간이 아니라, 다종다양한 생물들이 서로 조화롭게 공존하는 생태계를 말한다.
▶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연의 질서가 경쟁에 의해 유지된다고 믿는다.
이는 '생물은 무한히 증식하려는 본능을 가졌으나,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모든 생물에게 있어서 경쟁이란 불가피하다'는 전통적 다윈주의자들의 주장을 우리 스스로 신봉하기 때문이다.
Overproduction?
전통적 Darwinism : 생물은 무한히 증식(overproduction)하려는 본능을 가졌으나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모든 생물에게 있어서 경쟁은 불가피
- 적정 군집규모를 유지하는 다양한 내적 조절 기작의 사례 (코끼리, 생쥐, 조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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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생물은 무제한적으로 성장하려는 본능을 가졌을까?
다아윈은 코끼리의 예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코끼리는 30살이 되면 새끼를 낳기 시작해서 90살까지 출산을 할 수 있는데, 한 쌍의 코끼리가 일생동안 6마리를 출산하게 되고, 이로부터 750년이 지나면 한 쌍의 코끼리가 1,900만 마리에 이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지구는 코끼리로 뒤덮일텐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굶주림, 이상 기후, 질병 등 외부요인에 의해 ‘죽음’으로써 그 군집의 규모가 조절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실제 코끼리 암컷이 생식능력을 가지는 시기는 8살에서 30살까지 다양하며, 대체로 55세까지 출산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끼리 군집이 적정한 규모를 넘어서면 생식 가능한 시기가 늦어져서 30세에 이르러서야 임신이 가능하고, 만약 적정한 군집의 규모보다 작아지면 8세부터 임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무작정 번식을 하고, 그 군집의 적정 규모는 외부요인에 의한 죽음으로써 조절되는 것이 아니라 코끼리에게 있어서는 적정 군집규모를 유지하는 내적 조절기작이 있음을 시사한다.
▶ 생물들의 다양한 경쟁회피 기작
생물들의 다양한 경쟁회피 기작 - 고유한 생태적 지위(ecological niche) - 서식처의 시간적, 공간적 분할을 통한 효율적 경쟁회피 - 동일한 생태적 지위를 가진 종들의 다양한 경쟁회피 기작 (분산기작, 세력권 원리, 우점 계급구조의 형성 등) |
자연에서의 생물들은 스스로 군집 규모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뿐 아니라, 불필요한 경쟁을 회피하는 다양하고 능동적인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다. 그 중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각자 고유한 ‘생태적 지위(ecological niche)’를 가지는 것이다. 실제로 동일한 서식처의 유사종들 사이에 동일한 생태적 지위를 가지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동일한 생태적 지위를 가진 동종의 생물들 간에도 효과적으로 경쟁을 회피하는 다양한 기작들이 존재한다. 이를 테면 ‘분산기작’, ‘세력권 원리’, ‘우점 계급구조의 형성’ 등이며, 이외에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약육강식의 자연현상으로 오해하고 있는 포식과 피식, 먹이 약탈 행위 등도 투쟁이 아니라 오히려 일종의 균형 잡힌 공존을 위한 기작으로 이해할 때 자연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다.
▶ 토양생태계의 이해
토양은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얇은 막으로서 100만종 이상의 온갖 생물이 살아가는 공간인 동시에 인간이 생명을 이어가는데 필요한 식량의 대부분을 얻고 있는 생활 터전이다. 토양에 대한 일반적 상식은 대개 그러한 외형적인 데에 머물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토양은 거시적인 면에서 하나의 생태계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토양은 콘크리트와 같은 딱딱한 물질세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역동적인 공간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토양 속에서는 미시적 생물군에 의한 유기물 분해작용, 각종 무기물질의 전환, 에너지의 순환, 호흡작용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즉 하나의 생물작용의 순환계 즉 토양생태계로 존재하는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생태계란 생물체와 환경이 서로 밀접한 영향을 주고 받는, 개체수준 이상의 생명현상을 말한다. 대개의 경우 생명현상은 공기, 물, 각종 영양소, 알맞은 생활공간이 보장되어야 유지된다. 토양생태계도 생태계인 만큼 그와 같은 조건이 모두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 토양형성 과정과 숲의 천이과정
균류(菌類)와 조류(藻類)의 공생체인 지의류(地衣類)들은 어떠한 생물도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생명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영양물질이 없는 척박한 바위 표면에 지의류가 부착하면 균류는 대기 중의 습기를 균사로 흡수하여 광합성의 필수 재료인 물을 조류에게 공급하고, 조류는 이를 이용해 광합성을 한다. 광합성 산물은 곰팡이에게 다시 분배되는 상호협동을 통해 생명의 뿌리를 이어간다.
한 살이가 끝난 지의류는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며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유기산이 바위의 무기물질들을 녹여내어 토양을 만들어낸다. 초기의 얇은 토양층은 한해살이 풀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되며, 한해살이 풀들의 한 살이는 토양의 유기물로 환원되어 좀 더 비옥하고 깊은 토양층을 형성함으로써 여러해살이 풀들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 환경으로 성숙된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면서 나무들의 줄기를 지탱할 수 있을 만큼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토양 또한 발달하며, 작은키 나무에서 큰키 나무로, 양수림에서 음수림으로, 궁극적으로 숲은 극상림으로 발달한다.(극상림에서 발생하는 자연적인 산불은 새로운 숲의 일생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따라서 천이과정 중에 새로운 식물의 출현은 식물들간의 경쟁에 의한 자연선택이라기보다 그 식물이 뿌리 내릴 수 있는 토양환경에 좌우된다. 즉, 숲의 식생 천이는 식물들의 경쟁적 상호관계로만 보아서는 안 되며, 식물들의 삶의 기반이 되는 토양의 형성과정과 함께 해석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숲 생태계의 일생에서 각각의 단계는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며, 앞선 세대의 식물들은 후속하는 식물들의 생존 환경을 조성하는 선구 수종의 관점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지, 누가 누구한테 쫓겨나고, 누가 누구한테 경쟁에서 밀리고 하는 개념으로 해석될 수는 없는 것이다.
▶ 식물들의 경쟁
다아윈이 매우 통찰력이 뛰어난 생물학자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갈라파고스에서 30Cm에 이르는 긴 밀관을 가진 식물을 발견했을 때 이 섬에는 30Cm가 넘는 긴 침을 가진 곤충이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당시 다아윈 일행은 그런 동물을 관찰하지 못했으나, 이후 곤충 채집가의 포충망 속으로 침의 길이가 30Cm가 넘는 나방(Xanthopan morgani praedicta)이 날아들었을 때 다아윈의 예견을 비웃던 많은 곤충학자들은 입을 다물어야 했다. 다윈의 생물학자로서의 여러 업적을 폄훼할 뜻은 없지만 다윈이 자신의 관찰을 일반화하기 위해 수행되었던 여러 실험들 중에는 오류도 적지 않았다.
다윈은 동물뿐 아니라 식물 역시 치열한 경쟁에 의해 도태(혹은 선택)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통해 그의 주장을 입증하고자 했다.
이름하여 ‘수확의 원리’라는 것인데, 20여 종의 초본이 자라고 있는 한 지역의 목초지를 두 구역으로 울타리를 쳐서 다른 외부의 간섭이 없도록(초식동물의 접근을 차단)한 다음, 한 곳은 주기적으로 벌초를 해주고 다른 한쪽은 그냥 방치를 해두었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두 지역의 종 다양성을 비교해 보았더니, 주기적으로 벌초를 해준(수확을 한) 곳은 20종의 초본이, 방치한 곳은 11종의 초본만이 생존하고 있었다. 이의 관찰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은 자연계에서 식물들 간에 치열한 경쟁의 결과로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도태되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계의 순환원리를 무시한 오류에 불과하다.
식물은 나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와 분해자가 각기 참여하는 생태계의 물질순환 시스템에서 생산자의 위치를 점한다. 즉, 생태계는 이들 3자 간의 유기적 활동에 의한 물질순환의 사이클이 끊임없이 진행됨으로써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며, 이러한 물질순환의 단절 혹은 병목현상을 우리는 환경오염 혹은
에너지 흐름과 물질 순환 - 에너지는 빛에너지 -> 화학에너지 -> 열에너지의 형태로 지구생태계 관통 - 물질은 생산자와 소비자, 분해자 사이에서 생물지구화학적 순환 |
다윈의 실험에서 울타리 쳐놓고 소비자의 참여를 차단한 곳(방치한 곳)은 불완전한(물질순환이 단절된) 생태계다. 오히려 계속 벌초를 해준 곳이 인위적이긴 하지만 소비자의 참여가 이루어진 즉, 토끼와 노루와 그 밖의 먹이 선호도가 다양한 초식동물이 참여한 상대적으로 자연에 가까운 생태계인 것이다.
이 실험의 결과는 경쟁에 의한 적자생존을 입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식물들의 세상은 그들만의 관계로만 보아서는 안되며, 다양한 생태계의 구성요소들을 포괄적으로 고려해서 보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다.
결국 경쟁이란 생태계의 어느 한 단면을 설명할 수는 있을지언정 생태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창’이 될 수는 없음을 시사한다.
▶ 식물세계의 사회 안전망
가끔 아이들 숲 체험 현장에 따라 나선다.
숲 해설을 하시는 선생님께서 무언가를 보고 매우 측은해 한다. 울창한 활엽수림 속의 키 작은 나무를 가리키며 터를 잘못 잡은 탓에 곧 죽을 운명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아이들도 동의하는 눈치다. 자연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경쟁 세계라 배운 탓이리라.
햇빛을 많이 받아야 잘 자라는 양수와 그늘진 곳에서도 잘 자라는 음수에 대한 이야기.. 광합성 효율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고 가르치는 그대로이다. 하지만 땅속 세상에서 서로 얽히는 공존의 원리는 모르는 것 같다.
곰팡이와 식물뿌리의 공생 : 균근 - 땅속에서 곰팡이 균사체의 물과 영양분 흡수효율은 뿌리의 100배 - 공생의 대가로 식물은 광합성 산물을 곰팡이와 분배 |
1990년대 초 오레곤 주립대학의 균류학자 수전 시머드(Suzanne Simard)가 이끄는 연구진은 실제 숲 생태계에서 일련의 야외실험을 시작하였다. 균근(곰팡이와 뿌리의 협동)을 통한 나무 사이의 자원 전달을 측정하기 위해서였다. 지구상에 사는 모든 식물은 미생물과 공생을 한다. 그중 식물의 90% 이상은 뿌리와 곰팡이 사이에 끈끈한 유대를 이룬다. 물과 양분을 찾는 실력은 곰팡이의 균사가 뿌리보다 100배 정도 효율적이다. 균사로부터 공급받은 물과 양분으로 식물은 광합성을 하며, 광합성 산물의 10~30%는 뿌리를 통해 곰팡이에게 전달된다. 일종의 수수료인 셈이다.
연구진은 특정 종의 곰팡이로 이루어진 균근이 동일종의 나무들뿐만 아니라 다른 종의 나무들까지 서로 연결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은 자작나무와 전나무를 연결시켜주는 네트워크를 관찰한 결과 이 나무들이 열 종류의 균류 공생체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놀랍게도 햇볕을 받은 자작나무는 균근의 연결 네트워크를 통해서 그늘진 곳의 전나무에 당을 공급하고 있었다.
요정의 고리(fairy ring) - 식물의 뿌리와 균류의 땅속 유대가 가끔은 풀밭위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요정이 내려와 춤을 추는 모습을 닮았다 해서 요정의 고리라 불리우는데, 나무를 중심으로 해마다 원이 커진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송이버섯도 소나무 뿌리와 공생하는 곰팡이(분류학적으로 버섯도 곰팡이계에 속함)의 자실체(생식기관)이다. |
시머드의 연구진은 이 숲의 땅속 그물망을 탐험하면서 역동적인 지하 상호 의존성의 새로운 원리를 발견했다. 빛을 찾으려고 애쓰는 어린 묘목이 대부분을 이루는 그늘진 곳의 식물들은 숲의 지붕 꼭대기에서 햇빛을 받고 있는 식물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숲속 식물들의 광합성 산물은 종 내에서 그리고 종 사이에서 재분배된다. 많은 자는 베풀고 가난한 자에게 나누는 식물세계의 사회 안전망이다.
이제 우리는 숲을 개개의 나무와 풀들이 그저 함께 모여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좁은 사고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숲이란 우리 눈에는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던 땅 속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통해 상호 긴밀히 조절되는 거대한 생명체의 모습인 것이다. 마치 수없이 많은 세포들이 '나'라는 존재를 만드는 것처럼....
▶ 새로운 패러다임
시골에 가면 어디서든 소를 만난다. 우직하고, 강력한 추진력의 상징 동물인 소의 생존을 좌우하는 것은 우습게도 세균이다. 소는 초식동물이지만, 식물의 주요 에너지 저장물질인 섬유소를 분해하는 능력은 없다. 섬유소를 포도당으로 분해하여 소에게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역할은 소의 혹위에 살고 있는 섬유소 분해세균(cellulolytic bacteria)이 담당한다. 소는 세균에게 안정된 서식처를 마련해주고, 세균은 소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협동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소와 세균의 협동관계가 깨어지는 순간 소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자연에 나가 조금만 주의 깊게 관찰을 해보면,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생물들은 서로 경쟁을 회피하며, 오히려 상반된 힘을 가진 자와 협동을 하면서, 환경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의 생태학적 현상 중에서 가장 설명하기 곤란하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현상이 ‘경쟁’인 것은 사실이지만, 단언하건데 자연에서는 경쟁을 피해 자기만의 고유한 생태적 지위(ecological niche)를 가지거나, 협동하는 생물만이 살아남는다.
자연은 경쟁의 메카니즘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협동과 조화의 메카니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으로 압축되는 경쟁의 논리가 아니고, 오히려 협동과 상호공존의 패러다임으로 자연을 바라볼 때 진리에 다가설 수 있으며, 인간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 생명탄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우리는 새 생명이 잉태되는 그 순간에도 치열한 경쟁이 있었다는 사실을 학교에서 배운다. 수 억개의 정자가 하나의 난자와 결합하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경쟁은 우수한 인자의 후손을 탄생시키기 위한 자연의 법칙이라 믿는다.
일견 결과만을 두고 볼 때는 그러하다. 하지만 우리가 자연에서 배운 바로는 생물은 어떠한 인공적인 기계보다 효율적인 존재이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하나의 정자만이 선택될 뿐인데, 왜 그렇게 많은 정자가 필요했을까? 혹시 경쟁이 아닌 협동의
생명의 씨앗, 난자가 존재하는 곳은 신성하며, 면역학적 방어를 포함하여 외부로부터 온갖 병원균의 침입과 감염에 대비하는 특별한 방어 시스템이 있다. 이는 정자라고 해도 특별히 예외는 아니어서 이러한 방어 시스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정자 군단(群團)이 필요하다. 방어벽을 뚫기 위한 일종의 인해전술인 셈이다.
새 생명의 탄생이라는 숭고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첫 번째 방어벽을 통과하는 정자는 불과 수백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정자들은 죽음으로 동료 정자들의 장벽 통과를 돕는다. 실제 임상적으로 최소 2,000만개 이상의 규모가 되지 않으면 남성 원인의 불임으로 간주한다. 수억의 정자 중 살아남을 수 있는 정자는 미리 점지되어지는 것도 아니며, 특별히 내성이 강한 정자의 존재도 아직 확인된 바 없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수백의 정자 중 오랜 레이스 끝에 맨 먼저 도착한 정자가 수정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흔히 난자와 정자의 크기를 농구공과 작은 진주알의 크기로 비유한다. 상대적으로 어마어마하게 큰 난자의 바깥은 ‘투명대’라고 하는 또 다른 거대한 방어벽이 있고, 이 방어벽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은 정자의 머리 부분에 있는 ‘acrosome-첨체’라고 하는 곳에서 분비되는 분해효소의 작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자 하나가 가진 효소로는 철통같은 방어벽을 뚫고 난자의 세포막에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수백의 정자가 번갈아 가면서 협동 작전을 펼쳐야만 한다. (산부인과에서 인위적으로 체외 수정(IVF)을 시도할 때는 수 만개의 정자가 협동해야만 투명대를 통과할 수 있다 함.)
수정을 위해 첫 번째 장벽을 넘는 순간에서부터 최종적으로 난자의 세포막과 융합이 일어나는 마지막 단계까지 어떠한 과정에서도 경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은 없다.
이윽고 하나의 정자가 난자의 세포막과 융합하여 새 생명을 잉태하는 순간!!! 놀랍게도 그 때까지 정지해 있던 거대한 난자가 왼 방향으로 회전을 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지구의 자전이나 공전, 태양계,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행성들이 예외없이 왼 방향으로 회전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된다. 현미경 시야에서 펼쳐지는 수정란의 회전을 관찰하고 있자면, 누구나 장엄한 우주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지구의 남극과 북극처럼, 난자도 식물극과 동물극으로 불리우는 축을 가진다)
수정란과 우주.. 부분과 전체는 구조나 본질에 있어서 같다는 프랙탈(Fractal)의 원리를 그대로 따르는 것 같다. 참 신비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경이로운 새 생명의 탄생 과정을 어떻게 경쟁의 메카니즘으로 단순화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수없이 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자랑스런 승리에 도취하기 전에, ‘나’라고 하는 존재의 탄생을 위해 함께 노력한 수없이 많은 협력자들의 희생과 협동의 정신을 먼저 배워야한다. 그러한 희생과 협동의 결과가 ‘나’이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도 소중한 존재이며, 삼라만상 생명 있는 모든 것은 경외의 대상이 된다.
▶ 자연에서 배우는 지혜
우리는 왜 자연을 찾는가? 도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의외로 답은 쉽다.
“각박한 도시생활에서 지친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 ... ”
지구 생태계의 긴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숲으로부터 나온 인류가 농경생활을 거쳐 산업사회로 발전한 시기는 아주 짧은 시간동안에 이루어졌고, 콘크리트 벽돌과 자동차 그리고 온갖 인공 구조물 속에 갇혀 편안해 하기에는 아직 그 진화의 역사가 짧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고래가 수면으로 나와 긴 호흡을 하듯이 우리는 가끔이라도 자연에 나가 생명의 공기를 호흡해야만 한다.
우리 미래 세대에 있어서의 자연은 현명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배움터이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을 위한 치유의 놀이마당이다.
자연 속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생명의 공기를 호흡한 아이들은 동심을 회복할 것이며, 창의적 상상력이 나래를 펼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연을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얻는 삶의 지혜를 놓치기는 너무 아쉽다.
자연에 나가면 이름 모를 많은 생물들을 만난다. 이들의 이름은 무엇인지, 왜 그 곳에 있는지, 아이들의 상상력은 꼬리를 문다. 생태계에서 이들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은 자연을 이해하는 첫 걸음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자연 속의 생물들로부터 삶의 지혜도 배워보자. 척박한 환경에서 자연과는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상반된 능력을 가진 자들끼리 어떻게 협동하면서, 자기만의 고유한 생태적 지위를 구축하는지...
그래서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깨쳐보자. 남들과 경쟁하지 않고, 서로 협동하면서 ‘인간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배워보자. 이미 누군가 선점하고 있는 좁은 생태적 지위를 탐하여 경쟁하지 말고, 자신만의 고유한 생태적 지위를 만들어 가는 창의력을 키워보자.